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내가 이런 제목의 글을 쓸 거라고는 상상을 안했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나 여기저기에 썼었지만 사실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들어갔을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풀코스가 아니라 300키로만 걸어서 ... 아마도 스스로 평가절하를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었기도 했을거고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던 이유가 별다른 이유가 있던게 아니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지 1년 후, 나는 내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을 한다. 특히 광고업계 후배들이나 아이 키우기 힘들어하는 부모 후배들에게 꼭 같이가보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지 정확히 1년이 되었다. 지금 이시점에 그 산티아고 순례길이 내 삶의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1. 한달간 컴퓨터 화면을 보지 않는다는건 강제 '쉼'을 주었다.
아스토르가에서 새벽2시에 클라이언트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난다. 순례자들 전부 자고 있는데 전화받을곳이 없어서 알베르게 밖으로 나갔더니 거기 또 너무 조용해서 전화할곳을 헤메다가 어쩌다 알베르게(큰 공립알베였다) 지하로 내려가게 되었고 거기 자전거 보관하는 곳에 쭈구리고 앉아서 전화를 한 기억이 난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이란걸 알지만 클라이언트는 클라이언트의 상황이 급했으니 ... 그리고 그 사람은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이었으니 그려려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현지에서 정오가 되면 한국에서는 퇴근시간이다. 내가 주로 활동할 시간에는 클라이언트가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근 15년만에 처음으로 강제로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에이전시가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광고에이전시든 홍보에이전시든 이게 쉽지 않거든... 그동안 나는 휴가를 가도 메일을 항상 확인했고 항상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그게 강제로 한달정도 쉼을 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갔었을때는 잘 몰랐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 강제 '쉼'이 어떻게 작용할지.... 그냥 거기서는 ... 아 낮에 아무도 날 찾지 않으니 너무 좋네...라는 생각이었고 그것마저 행복했다.
2.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게 의미가 있나...?
한달을 그렇게 강제 '쉼'을 하다보니 완전히 일하는 방식이나 접근 방법이 달라졌다. 어쩌면 나이가 이제 중년이 되면서 맞아 떨어진것도 있겠지만.... 그 뒤로 난 '굳이?', '왜 그렇게 열심히?', '좀 덜 빡빡해도 누가 뭐라하지 않아', '쉴때는 좀 쉬자' 마인드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빡시게 일을 하지 않는것은 아닌데
이전처럼 막 똥줄타고 완벽해야하고 예민하고 그런건 많이 사라진것 같다.
천성이 어디가겠냐만은 그래도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이전보다는 훨씬 낫다.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이제 열심히 일을 안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또 현생은 그게 아니라 돈이 필요하니 또 열심히 일하다가.... 아직도 이 부분은 해결중에 있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확실한건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 같다.
진작에 이랬으면 좀 더 여유가 있고 융통성이 있는 인간이 되었을텐데.... 그거 뭐라고 그렇게 빡시게 살아왔나 싶다.
인생 2막을 준비중인데...
아마도...일할때는 일하고 놀때는 노는...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을까 싶다.
3. 여행가가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던 레온에서 첫날밤에 라지에이터 켜는법을 몰라서 감기에 걸렸었다. 주인한테 물어보면서 라지에이터라는 존재를 다시 깨닫고..... 책에서 본거같은데 역시 현실과 책은 다르구나 라는걸 알았으며... 나이 43에 이걸 알아서 내가 다시 유럽에 올 일이 있을려나.... 씁쓸해 했는데...
그 뒤로 여행을 엄청 다니고 있다.
나는 스스로 네이버블로그형 여행가였는데 구글맵형여행가가 되고 있다. 그래봤자 아직 멀었지만 ㅋㅋㅋㅋ
전에 외국은 '외국에는 가지만 외국사람들과는 말을 하지 않겟다'라는 마인드였다. 땅만 보며 걷고 모든 정보를 확인하고 갔었는데 ...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그게 안되니 그냥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재미가 있었나보다.
그뒤로 세부에 한달살기로 아들데리고 다녀오고, 아들이랑 일본에 슬램덩크 송태섭마을도 보러갔고, 여름휴가도 가족끼리 하노이가 아니라 깟바랑 사파도 다녀오고... '어떻게된 되겠지'라는 마인드가 생긴것 같다.
43에 라지에이터 켜는거 배워서 뭐하나.... 했는데 다 의미가 있었다.
4. 아이들을 믿어주는 아빠가 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동의치 않을것이겠지만... 급발진 하는 아빠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난 이 아이들을 좀 더 믿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우리애가 문제아라고 해도 예전처럼 막 뭐라하진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런게 제일 문제였지. 우리 직원, 우리 가족보다 남들에게 피해주면 안된다는 인식이 커서 오히려 내편한테 뭐라 막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나는 애들을 더 믿어준다. 뭐 그렇다고 잘못하면 뭐라하진 않지만 크게 봣을때 강요도 하지않고 뭐라하지도 않는다. 첫째는 영어만 학원 다니라하고 거기서 잘안한다해도 뭐라 안한다. 드럼이랑 코딩이랑 자기 하고 싶은거 하라 하고....
조금 빨리 이런걸 알았으면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을거야.
쓰기전까진 몰랐는데!
쓰고나니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여유'라는것을 찾아준 것 같다.
진작에 이런걸 알았으면 좋았으려만..... 근데 진작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다고 내가 이런걸 깨달았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건 다 타이밍과 떼가 있는법인듯하다.